세종실록 국역본과 원본을 강독하다가 세종대왕의 백성(국민)을 위한 리더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 대목이 있어
여러분과 공유해 보고자 합니다.
세종3년(1421년) 3월 15일에 기록되어 있는 실록 속 하루를 함께 해 보겠습니다.
세종대왕의 법 집행 철학과 법을 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지 알 수 있는
감동적인 내용입니다.
[국역본]
집의 심도원(沈道源)이 계하기를, “난신(亂臣) 임군례(任君禮)·정안지(鄭安止)의 연좌인을 모두 처벌해야 합니다.” 하였다. 임금이 말하기를,
“담당관의 법을 집행하는 취지로서는 당연한 일이나, 그러나 내가 이미 상왕께 여쭈었으므로, 상왕께서 재량하여 처리하실 것이니, 너희들이 굳이 청할 것이 없다. 또 과거에는 비록 난신에 연좌된 자가 있다 할지라도 문제를 삼지 않더니, 지금에 하필이면 이 사람들만 가지고 죄를 주자고 주장하느냐.” 하니, 도원이 아뢰기를,
“군례의 아들 임맹손(任孟孫)은 다른 연좌인과 같이 볼 수가 없습니다. 그의 아비가 난언(亂言)을 할 때에 옷을 잡아 당기며 말렸은즉, 이것은 함께 참여하여 들은 것이오니 용서해서는 안됩니다.”
하였다. 임금이 말하기를,
“너의 말이 잘못이다.(1) 임금과 신하와의 의리가 비록 중하지만, 아버지와 아들의 은의도 또한 큰 것이다. 어찌 군신의 의로 부자의 은혜를 없앨 수 있겠느냐.(2) 맹손이 그 아버지의 옷을 잡아당기며 반란에 속한 말을 못하게 한 것은 곧 군례에게 효자 노릇한 것이다. 이것을 가지고 어찌 반란에 참가했다는 죄를 씌울 수가 있느냐.” 하였다.(3)
도원이 나간 뒤에, 임금이 말하기를,
“도원은 법을 담당한 관리로서, 다만 맹손이 그 말을 들은 것을 가지고 죄가 있다는 것만 알고, 맹손이 아비를 사랑하는 효심은 잊어버렸으니, 어찌 법을 안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.” 하였다.(4)
*집의(執義): 사헌부 소속 종3춤 직제
[한문 원본]
執義沈道源啓: “亂臣任君禮、鄭安止緣坐之人, 宜竝置於法。” 上曰: “有司執法之意則然矣。 然予已請於上王, 上王商量區處, 爾等不可固請。 且前此雖有亂臣緣坐者, 不論, 今何必罪此等人?” 道源曰: “君禮之子孟孫, 非他緣坐之比。 當其父亂言之時, 牽衣止之。 是乃與聞, 固不可宥也。” 上曰: “爾言非也。(1) 君臣之義雖重, 父子之恩亦大。 安可以君臣之義, 廢父子之恩乎!(2) 孟孫牽父之衣, 禁其亂言, 則是乃君禮之孝子也。 豈可以與聞, 加罪乎?”(3) 道源出, 上曰: “道源執法之吏, 徒知孟孫之與聞爲有罪, 而忘孟孫愛父之孝心, 可謂知法乎?”(4)
[세종실록 03/03/15]
[Think Virus 의 생각]
<소학>의 명륜(明倫)편에 인간의 마땅한 윤리로 '父子之親, 君臣之義, 夫婦之別, 長幼之序, 朋友之交' 의 다섯 가지를 밝히고 있습니다. 인간의 윤리 중 첫 번째가 '자식이 부모를 섬김'이며 '임금과 신하의 의'는 그 다음의 윤리임을 알 수 있습니다.
즉, 법을 집행함에 있어서 인간의 마땅한 윤리에 바탕을 두고 판단해야 한다는 세종대왕의 철학을 알 수 있는 부분이지요. 아마도 조선시대 선조들이 인격수양을 위해 <소학>을 먼저 배우고 난 후 본격적인 학문인 <대학>을 배우는 것 역시 이와 같은 철학이 아닐까요?
'너의 말이 옳다/좋구나'라는 말씀으로 말을 시작하시는 분이, '너의 말이 잘못이다'라고 시작하신걸 보면 무척이나 화가 나셨나봅니다.
요즘의 법 집행에 있어서도 법적 항목의 원리원칙에 의한 적용과 인간의 윤리적 판단에 의한 법 적용 간의 우선 순위와 유연성에 대해 고민을 던져주는 일화가 아닌가 합니다.
인문학을 통한 상상력과 통찰력을 기반으로 창조적 영감을 배양합시다!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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